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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inical Road Map of Internal Medicine』의 저자 조재형 교수님을 만나다 -

현재 우리나라의 의과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교육은 이른바 ‘서양의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래서일까, ‘Grey's anatomy’와 ‘Harri-son's Principles of Internal Medicine’을 비롯하여 기초과목에서 임상과목까지 ‘교과서’로 추앙받고 있는 책들은 대부분 영국이나 미국에서 물 건너온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금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져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내과학 책이 있다. 바로 그림과 알고리즘이 책의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Clinical Road Map of Internal Medicine (이하 로드맵)’ 이 주인공! 본과 4학년 시절부터 불철주야 한국교과서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신 가톨릭 대학교 내분비 내과의 조재형 교수님을 만나 책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부터 내용까지를 들어보았다.

90년대 후반에 국가고시에서 합격률이 60%대까지 떨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이로 인해 각 학교에선 국가고시를 상대로한 ‘족집게 강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조 교수님은 이때 본과4학년 시절이었고 이 ‘족집게 강의’에서 들은 엑기스 내용과 칠판 필기방법을 응용하여 노트를 정리하였고 이에 대하여 동기들에게 폭발적 반응을 듣다보니 문득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어, 이거 책으로 내도되겠다!’ 국가고시 합격 후 책을 출판하기 위해 여러 출판사를 돌아다녔지만 학생의 노트를 쉽게 출판하기는 어려웠다. 그 후에 수련의를 거쳐 바쁜 시간들을 보내다 군 복무를 하게 되고 여유시간이 조금씩 생겨나니 다시 책을 출간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학창시절부터 유난히 친했던 동기 주지현, 장정원교수님과 함께 지금 이때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되어 다시 책을 다듬는 작업을 시작했었다. 이 세명이 모여 2만장이 넘는 슬라이드를 스캔하고 그들 스스로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도 배워 그림들을 다듬고 하는 막노동 끝에 드디어 2004년 1판이 발행되었다. 당시 소프트커버판을 포함하여 해리슨다음으로 많이 팔린 내과학 책이었다고 한다. 몽골 울란바토르의대 교수가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된 이 책을 국가 보조로 출간하겠다고 요청했던 것과 인도의 한 출판사에서도 인도번역판 출간을 권유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꿈은 여기까지가 아니었다. 이 세명의 저자가 로드맵을 출판하면서 세웠던 두 가지 목표는 다름아닌  아마존닷컴에 책을 올리는 것과 하버드 의대생들이 이 책을 보면서 공부하게 되는 것! 이것을 충족하기 전까진 그들은 만족할 수 없었다. 이후 2년 뒤 이들의 노력을 지켜봐왔고 꿈을 잘 알고 있는 출판사의 편집장이 다시 한번 세계를 겨냥해 보자고 하며 로드맵 2판 제의를 해 왔다. 좀 더 양질의 책을 출판하기 위해 메디컬 전문 일러스트레이터를 교육하기도 하는조교수님의 색다른 노력과 책의 커버를 담당한 동양화 화가부터 본과4학년 학생까지의 총 120명의 도움을 바탕으로 4년 만에 새로운 2판이 나왔다. 문제풀이도 첨가되었고 외국 유수의 교과서와 비교해도 자랑스럽다는 주변의 반응을 등에 업고 그들의 첫 번째 목표였던 아마존닷컴에의 등록을 당당히 성사시켰다. 그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 하기 힘들다고 하셨다. 이제 두 번째 목표를 향해 유수 해외 출판사와 계약의사를 타진 중이다.

처음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 로드맵을 읽어 보았을 때에는 이런 구구절절한 사연과 노력들보다는 세련되고 한눈에 들어오는 편집방식이 흥미로웠다. 책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Part 1 부분엔 문장 없이 거의 모든 부분이 플로우차트, 표, 그림등으로 채워져 있어 가독성이 상당히 좋다. 명화와 질병을 접목시킨 점도 재밌었다. 이런 구성 하나하나가 그냥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라 학생 때부터 갈고 닦아온 노력과 노하우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말씀하시는 조재형 교수님의 모토는 ‘미쳐야 미친다.’이다. 의대생 대부분이 본과에 진급해 내과학을 막연히 접하는 시기엔 해리슨 정독을 통해 영어와 의학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꿈을 꾸지만, 실제 수업이 진행되고 나면 넘쳐나는 족보와 끝없는 야마 외우기에 급급해 해리슨을 원서로 멋있게 보는 로망은 점차 희미해져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노트로 책을 내야겠다는 목표를 이룰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힘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조재형 교수님은 같이 미쳐 주었던 친구였노라고 말씀하셨다. 맹목적임 암기에 시들어 갈 지라도 , 쏟아지는 시험에 척추가 마비될지라도 서로의 목표를 기꺼이 위하여 미쳐주며 소중한 꿈을 잊지 않고 나아갈 의대생이 있을거라고 믿는다. 그들이 만들어 낼 새로운 한국판 의학 교과서를 희망하며 건투를 빈다.   

김지은 기자/가톨릭
<jieunapple@e-mednews.com>